일본 진출 성공기업은 상품보다 먼저 시장을 바꿔 읽었다
비비고·신라면·K뷰티 사례로 살펴보는 현지 상품 분류와 유통채널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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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자리를 잡은 한국 기업들은 ‘더 좋은 상품’으로 승부하지 않았다. 일본 소비자가 제품을 부르는 이름, 경쟁이 비어 있는 틈새, 매장에 들어가는 순서를 먼저 읽고 그에 맞춰 상품을 두었다.
일본은 한국 기업에게 가깝고도 먼 시장이다. 물류비는 낮고 한류 덕분에 한국 제품 이미지도 좋지만, 품질 기준이 까다롭고 거래 하나를 트는 데 1~2년이 걸리는 일도 흔하다.
그런데도 최근 몇 년 사이 만두·라면·화장품에서 눈에 띄는 성과가 나왔다. 이들의 성공을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우리 상품을 어떻게 팔까’보다 ‘이 시장은 어떻게 생겨 있나’를 먼저 물었다는 점이 보인다.
사례로 본 ‘시장 바꿔 읽기’
비비고 만두 — ‘만두’를 ‘교자’의 언어로 다시 불렀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는 2026년 일본 냉동만두 시장에서 처음으로 점유율 10%를 넘겼다. 일본 냉동만두 시장은 약 1조 1,000억 원 규모로, 아지노모토와 이토안 두 회사가 약 70%를 차지한다(파이낸셜뉴스).
전환점은 2월 말 낸 신제품 ‘만두 교자’였다. 일본 소비자에게 익숙한 범주인 교자(餃子) 안으로 들어간 이 제품은 출시 3개월 만에 100만 개가 팔렸다. 새 범주를 가르치는 대신, 이미 있는 장바구니에 자리를 만든 것이다.
신라면 — ‘라면 시장’이 아니라 ‘매운 라면 시장’을 봤다
일본 라면 시장은 연 7조 원 규모지만 간장·된장·소금·돈코츠 맛이 대부분이고, 매운 라면은 약 6%에 불과하다. 농심은 이 작은 틈새에서 신라면으로 40%를 잡았고, 농심재팬 매출은 2021년 100억 엔에서 지난해 209억 엔으로 두 배가 됐다(파이낸셜뉴스).
거대 시장 전체에서 현지 강자와 정면으로 붙기보다, 그들이 비워 둔 자리의 1등이 되는 쪽을 택한 셈이다.
아렌시아 — 매장에 들어가는 ‘순서’를 읽었다
일본 화장품 거래의 약 90%는 오프라인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버라이어티숍·드러그스토어는 보통 일본 내 판매 실적을 확인한 뒤에야 제품을 들인다(다음뉴스).
아렌시아는 2023년 9월 온라인 플랫폼 큐텐재팬에 먼저 들어가 두 달 만에 클렌저 1위에 올랐다. 한국에서 ‘떡솝’이던 제품 이름은 일본인에게 친숙한 ‘모찌솝’으로 바꿨다. 온라인 실적을 본 로프트가 먼저 입점을 제안했고, 오프라인 매장은 2024년 550곳에서 1,100곳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비나우(브랜드 퓌)는 올해 일본이 전체 매출의 약 40%를 차지할 것으로 본다. 김대영 대표는 큐텐재팬을 "일본에서 제품을 알리기에 가장 좋은 채널"이라고 평가했다(바이라인네트워크).
시장을 바꿔 읽는 네 가지 질문
세 사례와 일본 B2B 현장의 조언을 합치면, 성공 기업들이 상품보다 먼저 던진 질문은 네 가지로 정리된다.
질문 | 무엇을 보나 | 사례
일본 소비자는 이 제품을 무엇이라 부르나 | 현지에 이미 있는 상품 범주와 이름 | 만두 → ‘만두 교자’, 떡솝 → ‘모찌솝’
강자가 비워 둔 자리는 어디인가 | 전체 시장이 아닌 틈새 시장의 크기와 경쟁 | 라면 시장의 6%인 매운 라면에서 40%
매장에 들어가는 순서는 무엇인가 | 유통사가 입점 전에 요구하는 증거 | 큐텐 실적 → 로프트·드러그스토어
누가 어떻게 구매를 결정하나 | 상향식 결재, 상사·벤더 중심 유통 | 전시회·대면 확인 후 장기 거래
B2B도 다르지 않다. RX JAPAN의 이명구 총괄은 일본 바이어가 "가장 저렴한 공급사보다 안심할 수 있는 공급사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실무자가 기술·품질·생산 부서와 조율해 결재를 올리는 구조이고, 상사·유통기업이 발굴부터 사후관리까지 맡는 경우가 많다(산업일보).
실패는 대개 ‘상품부터’에서 시작된다
반대로 일본에서 고전하는 기업들에는 비슷한 패턴이 있다. 현지 전시회 주최사와 KOTRA 무역관이 꼽는 흔한 실수는 이렇다(산업일보, CNC뉴스).
가격부터 내민다. 일본 바이어는 단가보다 불량률·납기·사후 대응을 먼저 본다. 가격만으로는 중국산을 이기기도 어렵다.
호의를 계약으로 읽는다. 담당자의 긍정적인 반응은 회사의 구매 결정이 아니다. 회신이 늦은 것은 내부 검토 중일 수 있다.
최종 수요처만 찾는다. 종합상사·전문상사·수입벤더 같은 중간 유통망을 건너뛰면 문이 열리지 않는다.
단기 성과에 조급해한다. 진입에 1~2년 이상 걸릴 수 있는데, 첫 상담 반응만으로 시장을 포기한다.
네 가지 모두 우리 상품의 강점을 누르는 데만 집중하고, 일본 시장이 어떻게 사고 어떻게 결정하는지는 뒤로 미룬 결과다.
중소기업이 지금 해볼 수 있는 것
대기업처럼 현지 법인과 대규모 마케팅이 없어도, 시장을 먼저 읽는 일은 작게 시작할 수 있다.
현지 이름 찾기 — 우리 제품이 일본 매장에서 어느 진열대에, 어떤 이름으로 놓일지부터 확인한다. KOTRA 해외시장조사나 현지 매장 방문이 출발점이다.
틈새를 숫자로 재기 — 전체 시장이 아니라 우리가 1등을 노릴 수 있는 세부 시장의 크기와 경쟁자를 본다.
온라인으로 실적 만들기 — 소비재라면 큐텐재팬 같은 온라인 채널에서 판매 실적과 리뷰를 쌓고, 그것을 들고 오프라인 벤더를 만난다.
안심을 파는 제안서 — B2B라면 가격표 대신 인증·품질관리·납품 사례·사후관리 체계를 앞세운다. 일본 내 전시회에서 대면으로 제품과 현장을 보여주는 것도 효과적이다.
맺음말
일본 시장에서 성공한 한국 기업들은 상품을 바꾼 것이 아니라, 상품을 놓을 자리를 먼저 찾았다. 만두는 교자가 됐고, 떡솝은 모찌솝이 됐고, 신라면은 ‘매운 라면’이라는 작은 시장의 주인이 됐다. 일본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이라면 상품 설명서보다 시장 지도를 먼저 그려야 한다.
원고 참고자료
日 점유율 10% 넘은 비비고 만두…종주국 사로잡은 K푸드 — 파이낸셜뉴스(2026.07.09)
일본서 큰 성공 거둔 한국 화장품, 그 뒤엔 ‘직구’ 플랫폼 — 다음뉴스(2025.01.12)
일본에서 성공한 K뷰티 배경에는 ‘이것’이 있다 — 바이라인네트워크(2025.12.09)
“일본 시장, 품질·신뢰·대면 확인이 거래의 출발점” — 산업일보(2026.07.20)
일본 소비재 수입 벤더가 꼽은 K-뷰티의 경쟁력과 기회는? — CNC뉴스(2024.10.28)
편집자 주 편집자 주: 사례에 나오는 시장점유율·매출·매장 수치 등은 원고에 인용된 보도 당시의 수치·전망을 그대로 소개한 것으로, 현 시점의 실적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업별 실적은 원출처에서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원고에 명기된 보도자료와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작성했으며 사례별 보도 당시 수치임을 표시했습니다.